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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Hwan | Sep 2 - Sep 30, 2022 | ROY GALLERY A1
Sang Hwan
Sep 2 - Sep 30, 2022 | ROY GALLERY A1
나는 줄곧 ‘성공한 삶’ 이라는 주관적이고 불투명한 타이틀에 목숨을 걸었다. 입에 달고 살았던 “서른 쯔음 성공할거야” 라는 대사와 패기라고 보기엔 아집에 가까웠던 어리고 파릇했던 이십 대 시절은 그래도 그 덕분에 남들보다는 많은 것들 보고 들으며 그것들 바탕으로 어떤 것들을 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고 그 시절 건방지게 그 대사를 외치던 나는 여전히 뚜렷하지 않은 이상향을 향해 양 손을 허우적거리고 있다. 어쩌면 실재하지 않을수도 있는 그것은 달콤한 독이 되어 나를 옭아매고 풀어주지를 않는다. 성공을 외치고, 이상을 좇으며 열심히 살아왔으나 여전히 이상과 성공의 땅은 저 먼 곳 어딘가에서 그저 옅은 빛을 발하고 있고, 나는 그 곳을 밟지 못했다.
‘그곳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다’. 그곳은 애초에 우리가 삶의 목적을 끝없이 달성하기 위한 일종의 경주마를 달리게 하는 당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고,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여전히 성공을 꿈꾼다.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숱하게 뛰었던 걸음들, 내려놓았던 경험들, 미뤄야 했던 관계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결코 당연하거나 가볍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떠오르고, 그것들을 생각하니 외롭고 서글프다. 이윽고 멍하니 앉아있던 내 옆에서 골골거리는 하얀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는 나를 위해 당연하게 짧디 짧은 자신의 시간을 소비했구나, 확인하지 못한 이상을 좇느라 매일같이 밀어냈던 이 아이의 외롭고 차가운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베었다. 베인 곳은 피가 흐르지 않지만 많이 아프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는 아마도 스스로 어떤 시기에, 어떤 순간을 통한 깨달음이 아니라면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삶의 관념과 환경, 틀을 깨는 것은 지독히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붙잡고 머리채를 쥐어 흔들며 내가 깨달은 것들을 귀에 소리쳐도 그에겐 그저 소음일 뿐이다. 직관적이고 솔직한 방법은 틀리다. 반면에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은 사람의 내면을 자극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고 느낀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마지막으로 쉽고 친근하게 작업으로 담고 있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되어 보다 나은 삶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는 보다 많은 가치들이 나의 시선과 관심을 바라고 있지만, 그것들을 의외로 쉽게 놓치기 마련이라고, 이미 상실한 것들을 후회하기도 하고 아직 옆을 지키고 있는 것들은 주저없이 품으며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우리 한 번 그렇게 살아보자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유형주의 작업을 볼 때 그 표정을 그 얼굴에서 읽어내려고 해도, 설령 제목을 잘 보고 이해하려고 해도 작품 속 인물의 마음을 알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그러니까 관리되거나 우러나오는 표정을 짓지 않는 얼굴에 있다.그 얼굴은 어떤 인물이라는 구체성을, 다시 말해 인물임을 특징짓는 얼굴을 하지 않았고, 그의 어떤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볼 때, 이들의 마음 곧 내면 심리는 겉으로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동시에 그림에 대한 보는 사람의 인격 투사나 감정이입마저도 어렵게 하는데, 이 말은 곧 보는 사람이 우리―그림 속의 인물과 실제 사람—을 보고 판단할 때 식별 가능한 정보로서, 얼굴이라는 특징이나 내면을 '본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작품이라는 허구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실제로 보듯이 그의 작품을 논한다는 반대 의견은 성립되기 어렵다—우리는 작품이건 실제 인물이건 드러난 것을 두고 판단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인간의 얼굴이라 함은 '한 사람의 얼굴과 다르다. 설령 작가가 그때마다 머릿속에 (실재하건 아니건) 어떤/한 사람의 표정을 그렸다고 할지언정, 우리가 전시장에서 마주 보는 것은 '인간의' 얼굴이다. 그 말은 어느 사람의 얼굴이나 아는 누구의 표정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 물감을 가지고 실현한 재현이라는 인위와 통제되지 않은 우연적인 표현─소위 말하는 구상과 추상 사이는 물론, 내면의 변덕이나 속마음과 정돈된 신체 부위의 배치나 관리된 표정―이른바 감정/감정적인 것과 이성/이성적인 것을 따르지 않는 인간을 그린다.
작품은 인간 일반에 요구된 조건─이성적이고 정돈된, 초상으로서의 모습과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휘둘리는 모습―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다시 이들은 인간 일반으로서, 다시 말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도 사회적인 것도 따르지 않은, 깊이를 계속 지닌 존재로서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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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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